Monday, December 19, 2005

왜 과학을 하는 학도들이 더 기회를 주지 않으려고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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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과학을 하는 학도들이 더 기회를 주지 않으려고 하는가?

조작을 범한 과학자일지라도 국익에 도움이 되면 용서를 하고 다시 출발을 하도록 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용서할 수 없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대개, 과학을 하는 소위 과학도라고 하는 사람들이 후자의 입장에 많이 서는 반면, 전자는 일반인의 경우가 많은 듯 합니다. 아래는 과학적인 논문이 출판되는 과정을 내 나름대로 정리하여 본 것입니다. "사회과학"을 하는 사람으로 "자연과학"을 하는 사람과 차이가 있을지 모르지만, 그 대강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과정을 이해하면 왜 과학도들이 더 매정하게 보이는가에 대한 이해를 조금이나마 도울 수 있을 것 같아서 이 글을 남깁니다.

1. 논문의 발표과정

1.1. 연구자의 논문작성

우선 연구자는 논문을 작성해야 합니다. 이론에 기반해서 실험을 디자인 하고, 데이터를 수집하여 분석을 하여, 다시 처음의 이론을 입증하는 논문을 쓰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가 흔히 부르길 실증적연구에 기반한 논문이라고 합니다. 자연과학(이공계 포함) 분야는 거의 이런 종류의 논문입니다. 이 때 실험을 디자인하는 과정, 데이터를 수집하는 과정 등은 연구자의 자율에 맡깁니다. 연구자는 보통 자신이 커버할 수 없는 분야의 전문가와 손을 잡고 연구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많은데), 이들은 데이터 수집 후, 분석을 하고 사후 검증을 하여 애초에 논문에서 밝히고자 했던 논점을 설명하여 논문의 가치를 부각시기는 작업을 하게 됩니다.

실험 과정에서 얻어진 메모와 실험노트 등을 규합하여 드래프트를 작성합니다. 여기에 참여한 다른 연구자들은 보통 자신이 관여한 부분을 논문의 내용으로 작성하게 되고, 주저자 혹은 주연구자는 이를 규합하고 검토하여 처음의 원고를 만듭니다. 흔히 드래프트라고 부르는 논문입니다.

이를 다른 연구자와 회람하며 수정작업을 가집니다. 이 때 완성된 논문에 기여하는 정도를 가늠하여 저자의 순서를 정하고, 누가 대외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할 것인지를 정해 교신 저자를 정합니다. 보통 첫번째 저자가 담당을 하게 되는데 이유는 첫 번째 저자가 논문에 대한 기여도가 높으므로 그리고 데이터에 대해서 잘 알고 있으므로 교신이 수월하기 때문입니다.

논문이 완성되면, 학회에 보내 발표를 하거나, 학술지에 보내게 됩니다.

1.2. 동료집단으로부터의 익명리뷰 (Peer blind review)

논문을 받은 학술지의 편집진은 우선 논문 내용의 전문가를 선정하여 리뷰어를 선정하고 리뷰가 가능한지 선정된 리뷰어에게 의사 타진을 합니다. 불가능한 경우, 다른 사람을 더 찾아서 리뷰어를 구성합니다. 보통 3인 정도이나 더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받은 논문의 저자 이름을 삭제한 후에 원고를 리뷰어에게 보냅니다. 저자이름을 삭제하는 것은 저자의 이름 자체가 리뷰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논문 내용만으로 저자가 누군지 알 수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만 이는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고 하겠습니다.

리뷰어는 정해진 규칙에 따라서, 논문이 실릴 가치가 있는지를 평가하여 다시 학술지의 편집진(장)에게 답장을 하게 됩니다. 이 때, 관련 질문이나 비판을 하게 됩니다. 여기서, 리뷰어들이 원래의 데이터나, 실험에 관한 모든 정보를 요구하지는 않는것이 관행입니다. 리뷰어들은 원칙적으로 논문에 사용된 데이터에 대한 신뢰를 하고 논문 내용을 리뷰합니다. 즉, 논문을 쓴 저자들이 가공의 데이터를 만들었을까하는 생각은 대개는 하질 않는다는 점입니다. 관련된 질문이나 코멘트는 주로 논문에서 나타나는 형식적 논리의 오류나, 검증과정에 있어서 불확실한 점을 지적하여 보완을 하도록 하고, 관련 자료를 (표, 그림, 사진 등등) 첨가하거나 삭제하도록 권유하는 것 등입니다. 전반적으로 보아서 논문의 내용과 형식이 아주 허술하고 급조되었다는 느낌이 들거나, 이미 남들이 이루어 놓은 것이 반복되는 논문이라면 리뷰어들은 이를 지적하고 학술지에 싣지 말라는 의견을 피력합니다. 논문이 거절 (rejection) 당한다함은 바로 이것을 말합니다.

1.3. 통보

학술지의 에디터는 리뷰어의 리뷰를 모아서 검토한 후에 게재여부를 통보합니다. 보통 그냥 게재, 수정후 게재, 거절의 3가지 부류가 있는데, 교신 저자는 이를 통보받은 후, 공저자들에게 알립니다. 수정후 게재의 경우, 필요한 내용의 수정, 내용의 첨가, 삭제 등을 공저자들과 의논하여 담당 저자가 수정, 보완을 하게 됩니다. 교신저자는 이를 다시 학술지에 보내고, 다시 리뷰를 받게 됩니다. 거절의 경우 저자들은 다른 저널에 논문을 내는 것을 고려하게 됩니다. 이 때, 리뷰어들이 보낸 리뷰가 도움이 되어 수정작업을 거칩니다. 수정된 논문은 다른 학술지에 보내져 위의 과정을 다시 거칩니다.

2. 정직이 왜 중요한가?

리뷰어들이 데이터를 보자고 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우선, 리뷰어들에게 무척 성가신 일입니다. 데이터 분석을 리뷰어에게 다시 해보고 대조하라는 작업이 쉽고 간단한 일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리뷰만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도 아니고, 자신의 연구업적에도 신경을 써야 하므로 논문의 진위 여부에 온 힘을 쏟아 부을 수는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것은 데이터를 공유하거나 해서는 연구자 자신만이 이루어 놓은 업적을 공유하는 것이기에 껄끄러울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리뷰과정이 잘 안됩니다.

이런 이유로 연구자는 학위취득과정에서 정직이 중요함을 강조하는 교육을 받습니다. 데이터 조작에 관한 것은 물론이고, 남의 생각이나 글을 인용하는 방식, 거기서 자신의 생각을 창의적으로 도출하는 형식, 실험에 참가한 사람과 관련된 윤리문제 등에 관한 토론과 훈련과정을 갖습니다.

이와 더불어 언론과 과학자 세계와의 관계에 대한 토론도 합니다. 이 때 강조되는 것은 언론은 자신의 연구성과를 알리는데 있어서 2차적이고 부수적인 통로하는 점입니다. 즉, 위에서 설명된 논문의 게재형식을 따라서 관련 전문가에게서 비평을 받고, 수정작업을 마친 후에 연구분야의 전문가들과 그 결과를 공유한 후에야 언론이 접촉하면 상대를 할 수 있다고 교육을 받습니다.

자정이라 함은 바로 이런 자율에 기반한 정직을 의미합니다. 정직이 깨지면, 과학세계의 논문 발표는 회의와 의심으로 얼룩지게 되고, 이는 곧 과학발전의 지체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과학자들은 데이터가 조작이 되었다거나, 연구에 윤리적인 문제가 있었다거나 하는 문제를 덮는 것은 곧 과학이 죽는다는 것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과학 저널의 리뷰과정에서 리뷰어들이 저자의 진실성에 (혹은 데이터의 진위) 의심을 두지 않는 이유는 바로 이와 같은 과학 발전의 길이 신뢰에 기초한다는 것을 모두 잘 알고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과학도로 길을 선택한 사람들은 대개 정치나 사회에 대해 무관하게 제3자적인 입장을 가지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연구대상을 바라보는 것을 편해 합니다. 이는 자연과학을 하는 과학도들에게서 강하게 나타납니다. 이들은, 역사적으로, 과학의 발전이 경험(경험하는 것)과 이성(논리적으로 생각하는 것)에 의해서 발전되어 왔음을 잘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바로 이런 무관연한 태도때문에 가끔은 정치와 사회에 힘없이 엮이는 과학자도 생기게 됩니다).

혹자는 국민이 이해를 해주고 지원 해주면 신뢰성에 금이 간 과학자라도 재기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신뢰성에 금이 가버린 과학자를 받아 주는 학술지(학계)는 없는것이 보통입니다. 논문은 고사하고 학회에 가서 발표하기도 어렵게 됩니다. 그 나라 국민이 열열이 지지하고 안하고가 학술지의 편집자나 다른 과학자들의 결정에 도움이 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바로 이렇게 과학자의 성공여부는 바로 여론의 지지가 아닌 전문동료의 존경과 믿음에 의해서 판가름 납니다. 따라서 과학자들에게는 "원천기술"을 가지고 있음과 없음은 순전히 부차적인 문제가 됩니다. "부정을 하였으나, 기술은 있다"라는 말이 과학의 본말을 뒤짚어, 사람들이 현혹되도록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바로 이 점에 기인합니다.

더 무서운 것이 있습니다. 신의를 잃은 한국의 한 과학자가 전문동료가 아닌, 일반인들의 지지를 업고 과학을 계속하게 된다면, 주변의 한국 과학자들에게 엄청난 피해가 옵니다. 한국에서 나오는 과학성과는 여론에 좌우된다는 이미지가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한국 과학자들에게는 이것이 과학의 퇴보라고 생각되는 것입니다.

크게 보아서는, 이 모든 것은 바로 과학과 기술의 두 분야가 아주 똑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에서 비롯되는것 같습니다. 서강대학교의 이덕환 교수의 말처럼 (어느 강연에서), 과학기술이라고 붙여 쓰는 표기가 일종의 오해를 불러 일으키는 듯 합니다. 기술이라는 단어는 일종의 "실용"을 염두에 두고 생각되는 경향이 강합니다. 따라서 원천기술이니 특허니 하는 것이 중요하게 들립니다. 그러나 과학은 그보다는 훨씬 가치중립적입니다. 과학은 나름대로의 규칙에 의해서 누구에게 이익이가는가에 상관없이 굴러가게 됩니다. 그러나 기술과 관련된 연구도 과학이 선행합니다. 과학이 없이는 기술도 없습니다. 따라서, 진실성이 무너진 상태에서 "원천기술의 보유"에 관한 이슈와 논점은 "과학을 하는 학자에게" 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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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분이 익명으로 코멘트를 달아 주셨네요. . . . 아래에 코멘트를 다신 분의 설명에 의하면, 교신저자라 함은 연구논문의 프로젝트 전반을 담당한 연구자 (주로 주연구자 (PI, principal investigator))이고, 제일저자는 그 프로젝트에 공헌을 제일 많이 한 사람이라고 설명을 합니다. 제 경험의 경우에는 큰 차이가 없지만 (PI가 연구를 주도하고 논문에 공헌을 가장 많이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아마도 사회과학 계통의 연구라서 그런가 봅니다 (규모가 작음).), 이공계열 연구의 경우는 잘 몰라서 인풋 주신 분의 내용을 사족으로 답니다. 인풋 주신 분께 감사드려요.

Comments:
그러믄요...
 
Dear,
the corresponding author is not usually the first author in a paper. It is the one who is in charge of everything, so the principal investigator becomes the corresponding author. First author is usually the one who contributed the most to the project. However, some journals just put it in an alphabetical order. Thanks for your attention.
 
Hello, I appreciate your comment. I will put your comment at the end of the body. Thanks ag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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